도망시 뜻, 왜 하필 아내의 죽음에만 쓸까

장례식장에 가면 고인을 추모하는 글을 볼 수 있습니다. 이를 보통 조사(弔辭)나 만시(輓詩)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유독 남편이 죽은 아내를 위해 쓴 시는 따로 ‘도망시(悼亡詩)’라고 부릅니다.

친구를 위한 시도 있고, 자식을 위한 시도 있는데 왜 아내를 위한 시에만 ‘도망’이라는 특별한 이름을 붙였을까요? 오늘은 조선 사대부들이 체면을 버리고 펑펑 울 수 있었던 유일한 창구, 도망시 뜻과 다른 추모시와의 차이점을 알아보겠습니다.

도망시 뜻 대표 이미지

1. 서진(西晉)의 시인 판악에서 유래

‘도망(悼亡)’이라는 단어가 아내의 죽음을 뜻하게 된 것은 중국의 고사에서 유래합니다.

중국 서진 시대의 시인 ‘판악’은 아내 양씨가 죽자 그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시를 지었는데, 그 제목을 <도망(悼亡)>이라고 붙였습니다. 이 시가 워낙 절절하고 유명해지면서, 이후 후대 사람들은 아내를 잃은 슬픔을 노래한 시를 통칭하여 ‘도망시’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 [네이버 사전] 죽은 이를 애도하는 글 ‘만시’와 비교해 보기

2. 대상별 추모시의 종류

조선 시대에는 죽은 대상에 따라 시의 이름을 엄격하게 구분했습니다.

  • 도망시(悼亡詩): 아내의 죽음을 애도함.
  • 곡자시(哭子詩): 자식의 죽음을 슬퍼함. (참척의 고통)
  • 도붕시(悼朋詩): 친구의 죽음을 애도함.
  • 자만시(自輓詩): 자신이 죽기 전 스스로를 애도하며 씀.

즉, 도망시는 만시(輓詩)라는 큰 범주 안에 포함되는 하위 장르이지만, 그 대상이 오직 ‘아내’로 한정된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3. 사대부의 눈물을 허락한 유일한 장르

조선 시대 선비들은 감정을 드러내는 것을 점잖지 못하다고 여겼습니다. 하지만 도망시에서만큼은 예외였습니다.

평소에는 엄격한 남편이었더라도, 아내가 먼저 떠나면 “옷을 꿰매줄 사람이 없다”, “밥상이 차갑다”라며 생활 속의 빈자리를 구구절절 노래했습니다. 이는 아내를 잃은 슬픔만큼은 인지상정으로 인정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압권으로 꼽히는 것이 바로 추사 김정희의 작품입니다.

마치며

도망시 뜻은 먼저 떠난 아내를 향한 남편의 뒤늦은 후회와 사랑 고백입니다.

수많은 도망시가 있지만, 유배지에서 임종도 지키지 못한 채 “다음 세상에서는 역할을 바꾸어 태어나자”라고 절규했던 추사 김정희의 시만큼 강렬한 것은 없습니다. 차마 다 하지 못한 말들을 글자 속에 꾹꾹 눌러 담은 그 절절한 마음은 수백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먹먹한 여운을 남기고 있습니다.

여자가 남편을 위해 쓴 시는 뭐라고 하나요?

보통 ‘미망인(아직 따라 죽지 못한 사람)’이라는 표현을 썼지만, 시 자체를 지칭하는 별도의 고유명사가 굳어지진 않았습니다. 통상적으로 제문(祭文)이나 만시의 형태로 남겼습니다.

현대에도 도망시를 쓰나요?

형식은 다르지만, 아내를 잃고 쓴 ‘사부곡(思婦曲)’ 형태의 시나 에세이들이 현대판 도망시라고 볼 수 있습니다. 도종환 시인의 ‘접시꽃 당신’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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